⊙ 천안함 침몰 있던 2010년부터 ‘북한과의 지식교류협력프로그램’(KPP) 시작
⊙ KPP 대상은 관료가 아닌 30~40대 초 김일성종합대, 인민경제대 등의 젊은 학자
⊙ ‘경제특구’ 다룬 학술회의 6개월 간격으로 2차례 평양에서 열어… 北 뜨거운 관심
⊙ “평양은 지금 리모델링 중… 건물들 짓고 여성은 세련, 휴대폰•노트북 휴대할 수 있어”
朴京愛
⊙ 59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美 조지아대 정치학 박사.
⊙ 美 프랭클린앤마셜대학 정치학과 교수, 북미 한국정치학회 회장 역임.
現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 한국학연구소 소장.
⊙ 저서: 《변화하는 한반도 안보 동학(Korean Security Dynamics in Transition)》
《북한 외교정책의 새로운 도전(New Challenges of North Korean Foreign Policy)》 등.
지난 5월 2일 평양 양각도 국제호텔에서 경제특구 관련 학술 회의가 열렸다. 박 교수는 캐나다-북한 지식교류협력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다.
생각해 보면 남북 교류사에서 몇 안 되는 화사(華奢)했던 순간은 여성이 주인공이었던 순간이다. 1991년 지바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현정화(玄靜和)-리분희 복식조가 세계를 제패한 순간은 두고두고 감동적인 순간으로 회자됐다. 2002년부터 세 차례 남한을 방문한 북한의 여성응원단은 방문 때마다 화제를 몰고 왔다. 가수 이효리(李孝利)와 만수대예술단원 조명애가 2005년 동반 출연했던 삼성전자 광고는 오랫동안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문득 궁금해졌다. 문화나 스포츠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 북한을 드나드는 여성은 없을까. 그러던 차에 박경애(朴京愛) 교수의 존재를 알게 됐다.
北-캐나다 수교 과정에 참여
박경애 교수는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UBC)에서 정치학 교수와 한국학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지난 1995년 처음 평양을 방문한 이후 현재는 매년 한두 번씩 평양을 방문하고 있다. 첫 방문은 외교적인 목적 때문이었다.
지난 2001년 캐나다와 북한이 수교를 맺을 때, 캐나다 정부 인사들과 함께 막후에서 비정부 차원의 접촉 과정에 관여했다. 현재는 캐나다-북한 지식교류협력프로그램(Canada-DPRK Knowledge Partnership Program•KPP)을 이끌며, 각종 경제 관련 국제회의를 평양에서 개최하는 등 학문 분야의 교류에 참여하고 있다.
캐나다에 거주하는 박 교수에게 전화를 통해 그동안 북한과 어떤 학문적 교류를 했는지와 최근 평양의 분위기, KPP의 진행상황 등에 대해 물었다.
—북한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습니까.
“제가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공산주의 비교연구를 주제로 논문을 썼어요. 중국과 북한의 정치발전을 비교했습니다. 북한에 대해 관심이 많았어요. 미국에서 교수를 할 때는 한국 국적이라 북한을 갈 수 없었지요. 세미나 같은 데서는 북한 학자들을 만나고 그랬지만요. 90년대 중반에 UBC에 교수로 왔습니다.
그때까지 캐나다와 북한 사이에는 공식외교 관계가 없었어요. 다만 트랙2 레벨에서 교류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와 캐나다인 교수 2명이 1995년에 처음 북한을 방문한 후 여러 번 북한을 왔다갔다했어요. 비정부 차원에서 방문하면서 캐나다 정부에 브리핑도 하곤 했습니다.
1996년에는 북한 측에서 캐나다로 답방을 오기도 했어요. 1999년에는 캐나다 외무성 사람들과 함께 평양에 갔습니다. 그때 캐나다는 자유당 정부 시절이었어요. 외교관계 맺는 것을 심도 있게 논의했지요. 2000년에 양국 정부가 외교관계 수립에 합의하고, 2001년에 수교를 했습니다.”
—북한과의 지식교류프로그램, KPP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습니까.
“수교를 한 이후에는 특별히 제가 북한에 갈 일이 없었어요. 거기다가 2002년부터 북핵문제가 터지기 시작했잖아요. 그때부터 북한과 캐나다는 외교관계는 있지만 교류가 거의 없어요. 지금까지도 그렇습니다. 2010년에 그런 생각을 했어요. 정치적인 이유로 교류가 전혀 없는 상황이니, 비정치적 차원에서라도 교류하자는 생각이었지요.
그래서 2010년 5월에 KPP에 대한 제안을 들고 평양을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때가 마침 천안함 침몰에 대한 조사 결과가 발표된 직후였어요. 캐나다 외무성은 저를 말렸어요. ‘북한 정부와 고위급에서의 접촉은 안 한다는 게 우리의 정책이다. 거기서 무슨 일이 생기면 정부 차원에서 도와줄 수 없다. 평양에 안 들어가면 좋겠다’는 얘기였어요. 그래도…
Source: https://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201409100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