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osun Ilbo, “‘The Korean Cool’: Consumption of the Korean Lifestyle,” Feb. 06, 2016

[‘코리안 쿨’ 제3 한류 뜬다] (1) 한국 라이프 스타일을 소비
뉴욕 노래방서 소주 마시고, 엑소(아이돌 그룹 EXO) 좋아해 한국史 공부하고

50인치 TV를 서너 대 걸 만한 대형 스크린에 한국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링딩동’이란 글자가 떠오른다. 백인 남자가 벌떡 일어나 마이크를 낚아채더니 빠른 곡조의 노랫말을 이어간다. 친구 20여 명이 소주 칵테일을 마시며 따라 부른다.지난해 11월 중순, 미국 뉴욕 32번가에 위치한 한인 타운 노래방. 주로 한국인들이 찾아온다 여겼다면 오산이다.

노래방은 뉴욕에서 좀 논다 하는 젊은이들의 ‘필수 코스’다. 금융계에서 일한다는 30대 유대인 남성은 “24시간 문이 열려 있어 스트레스 받은 날 꼭 온다”고 말했다. 한인 타운은 록펠러센터, 센트럴파크와 함께 뉴욕 대표 관광지로 꼽힌다. 한국 화장품과 K팝 CD, 가수 브로마이드를 잔뜩 사 들고 나서는 여행객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뉴욕에서 마케팅 일을 하는 김자연씨는 “10년 전만 해도 한국은 지도에서 어디쯤 있는지 설명부터 해야 하는 나라였지만 요즘은 뉴요커들이 먼저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게 뭐냐’고 물어온다”고 했다.

뉴욕 첼시에서 ‘블랭크 스페이스’ 갤러리를 운영하는 이나나 대표는 “뉴욕 스타일리스트들은 ‘뜬다’ 하는 한식당을 나보다도 먼저 다녀와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고 했다.

‘코리안 스타일’을 팝니다

‘코리안 쿨: 세계를 사로잡은 대중문화 강국 코리아 탄생기’를 펴낸 파이낸셜타임스 칼럼니스트 유니 홍은 “이제 한류는 한국이라는 국가 브랜드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K팝, K드라마를 통해 한국은 쿨한(멋진) 나라라고 생각한 세계인들이 스마트폰과 자동차는 물론 김치, 소주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라이프스타일 자체를 구매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KOFICE)이 지난달 해외 14개국 65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한국 드라마·영화·음악을 접한 뒤 한국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고 답한 응답자가 전체의 45.1%나 됐다. 이 중 ‘한국 음식을 먹고 싶다'(54.9%)와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51.6%), ‘한국 식품을 구매하고 싶다'(51%)는 응답은 절반을 웃돌았다.

한류를 연구하는 국내외 학자들은 “한류가 제3의 단계로 진입했다”고 분석한다. 한류 1단계가 한국 대중문화를 세계에 알렸다면, 2단계는 화장품·식료품 같은 소비재를 K뷰티·K푸드라는 이름의 유형(有形) 한류로 포장해 경제적 파급 효과를 낳았다. 3단계에 접어들면서는 기업을 넘어 국가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기여하기 시작했다. 캐나다 인류학자인 밀리 크레이턴(Creighton) 브리티시컬럼비아대 교수는 “한류 덕에 ‘한국은 굉장히 창의성 넘치는 나라’라는 인식이 세계로 퍼지고 있다. 한국 제품에 대한 신뢰를 높여준 것은 물론이다”고 말했다.

“내 사랑 엑소 때문에 韓國史 배워요”

팝과 드라마, 영화 등 대중문화가 중심이 된 한류는 한민족, 한글, 한국사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되고 있다.

지난달 7일 오전 10시 30분,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히브리대학교 강의실. 학생 20여 명이 듣는 수업 제목이 ‘전근현대 한국사’다. 동아시아학부 이주연 교수가 수업 중 ‘엑소’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학생을 발견하고 “왜 그 옷을 입었느냐”고 물었다. 학생이 “한국사 수업을 듣는 건 내 사랑 엑소 때문”이라고 말해 웃음이 터졌다. 이날 수업에서는 근대화 이전 한국 여성의 지위에 대해 토론했다. 한국 드라마를 즐겨보는 여학생 쉬르(22)는 “‘한국’ 하면 공부·일·성형 많이 하는 나라, 그리고 스마트폰, 음악, 드라마를 정말 섬세하게 만드는 나라!”가 떠오른다고 했다.

이주연 교수는 “2007년 ‘내 이름은 김삼순’으로 시작된 이스라엘 한류 열풍은 박찬욱·김기덕·봉준호 영화에 대한 인기로 이어지며 점차 확산 중”이라며 “한류를 접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한국이 전쟁과 빈곤을 이겨내고 큰 경제성장을 이룩한 나라라는 사실에 존경심마저 갖는다”고 전했다.

Source: http://srchdb1.chosun.com/pdf/i_service/pdf_ReadBody.jsp?Y=2016&M=02&D=06&ID=2016020600052